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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향한 통로

The Passage toward Infinity

이원일 (성곡미술관 수석큐레이터)

2001 개인전 무한을 향한 통로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김병걸의 작업은 거대한 호흡을 가지고 있다. 새벽을 맞이하는 웅장함과도 같은 긴 호흡, 그것은 밤을 삼켜버린 평온과 고요 끝의 정적의 세계다.

그리고 그 밤의 끝자락에서 생명의 여명이 꿈틀거린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에너지가 조용히, 투명하게 완성에로의 열림을 향하여 무한 속으로 걸어 나간다. 그렇게 김병걸의 공간은 밤과도 같은 심연의 정적을 가로 지르면서 동시에 새벽 명상의 긴 호흡을 내면화 시킨다.

기(氣)의 흐름과도 같은 에너지의 충만함이 응집되어 있는 발현체로서의 구조물들이 폐쇄되고 밀폐된 공간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막힘과 펼침, 그리고 열림의 이동성을 좇아 인식의 통로라는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정적인 사유와 절제의 함유를 체험하고 물질 속에 숨겨진 에너지와 잠재적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가시적 세계너머에 있는 비가시적 현상을 추적하여 현실의 외형보다 감춰진 진실 혹은 본질을 직시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제 그의 공간을 유영해 보자. 처음에는 거대한 규모로 시선을 압도하며 실재하는 전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조형물이 건축적 요소로 다가온다. 물적 환경을 이루는 실재로서 일종의 설계행위로 구축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서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거닐고 배회하다보면 그 미니멀적 추상 공간이 논리에 포위된 추상형상이 아니라 기체의 흐름과도 같은 남다른 독특함으로 꿈틀거림을 보게 된다.‘시각’에서 ‘조형’으로의 이행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서 공간과 시간의 속성이 구조물이 침투하여 시간, 공간, 관람자, 작품이 어떤 밀접한 ‘관계’를 생산해냄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관객의 신체성(동작), 직선과 곡선의 눈싸움이 주조해나가는 공간의 굴절과 통합이 팽팽한 긴장감을 통해, 부분(개별 작품, 관람자, 틈새)과 전체(전시 공간)의 관계를 하나로 잇는 연속의 지평을 설정해가는 것이다.

거기에 김병걸 조형의 핵심이 놓여 있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전체가 하나가 되는 선(禪)적 경지가 그것이다. 명상의 수련과정을 통해 물질과 정신의 조합을 꿈꿔온 자전적 체험의 결과에 의해 물질적 요소가 정신적 측면으로 변모되어 부분과 전체를 왕래하는 사유 공간에 ‘호흡‘이 거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의 수용자(관람객)들이 ’행간을 읽는다‘는 부분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공간의 행을 창조해나가며 자유롭고 열려진 통로를 향해 자신의 심신을 가세할 때 신체의 질량감마저 잊은 채 곡선과 직선의 출몰 속에서 유기체의 흐름과도 같은 ’연속의 지평‘을 새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경험의 통일적 구조」 속으로 들어가면 모뉴멘트의 거대함과 틈새, 그림자의 가벼움 사이를 통과하며 개개의 관계, 전체와 부분의 마찰 속에서 전체를 보려는 욕망과 실제적 결핍(시각의 차단), 즉 모뉴멘트적 모순의 공존이 주준 묘한 한기(寒氣)의 현기증을 체험한 후 전체를 향한 또 하나의 부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감정은 움직이는 에너지」에 멈춰서면 간명하나 요지부동의 실체가 아닌 감성적 에너지의 출렁임을 목격한다.

인간의 감정이 시간의 현존을 따라 파장과 율동으로 시각화될 때 작은 동요와 같은 심리적인 현상을 수반하며 형이상학적 지평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한 파동의 시공간성은 「진화는 직선이 아니다」에서 수직으로 상승한다. 그것에서 작가의 사간관이 선(線)을 지향하고 있으되 일직선적 진화로의 선분을 쫓지 않고 윤회적, 유기체적 곡선의 생명관과 조우하는 순환성과 가역성을 응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생각은 체험을 낳고」에 이르면 절단된 원통 속에서 곡선과 직선의 대립을 극복하고 자연과 인위의 조화로운 공존을 갈구하는 통로를 찾아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그것은 정돈과 본질의 의미를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형식에 담으려는 작가 자신의 ‘생각’이 체험이라는 사적인 요소에서 걸러진 사유의 통로를 통과하여 물질을 넘어서는 통합 지각적 요소로 나가기를 꿈꾸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안정을 찾는 욕구」에 다다르면 원과 사각형 그리고 그사이를 잇고 있는 ‘정조준’된 안정의 상징물을 바라보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어떤 안온함이 그윽하게 퍼져나가는 지극히 편안한 심리적 안정감을 체험한다. 시선의 이동에 의해 정사각형 속에 원구가 들어올 때 진정한 ‘하나 됨’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욕구가 비로소 충족됨을 목격하게 되며 인간적 꾸밈새와 자아가 비워진 그 오묘한 단순미는 물질의 천박함을 잠재우고도 남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하여 진정한 질서의 힘과 숨겨진 진리를 찾아 나서는 김병걸의 작업여정은 구도자의 그것에 가깝다. 하나 됨을 향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우주와의 합일을 닮아 보려는 성찰의 길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명상에 의해 자아를 비워내면서 정신으로 충만한 형상을 꿈꾸는 그의 작업은 자기 인식의 프로세스를 추적하는 일인 것이다.

겉으로는 비워내지만 속으로 채워지는 오묘한 단순미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작가적 의지는 그가 선택하는 재료와 색채의 의해서도 증명된다. ‘석고’라는 매재(媒材)가 고지식함과 거만한 불변의 가치를 벗겨내는 부드러움과 가변적인 중성성을 허용하고 종국에는 백색의 여백을 남긴 채 소멸을 수용하기에 그렇고 ‘흰색’ 또한 색채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탈색시켜버린 비움의 세계를 주조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단지 희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혼란을 차단할 뿐 오히려 더욱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공간의 유형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생산해내는 곡선 위에서 자연으로 환원된 들판을 보고, 직선을 압도하는 구릉의 무한한 힘을 느끼며 논두렁을 닮은 잔잔한 마음속의 진동을 호흡한다. 그리고 거기서 눈 덮인 흰 언덕을 넘어 혼돈의 풍경 속에 서 있는 고고한 학 한 마리의 날개짓을 바라본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통로를 향한 비상의 몸짓 말이다

copyright KIM Byung-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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