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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er

류혜진 (미술사)

2010 개인전 Transfer / 인천아트플랫폼

 

 

 

..우리는 전체를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망망대해의 수면 위를 물방울처럼 떠다닙니다... 세상의 끝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과 나는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희미해져가는 그림자, 무의해져가는 사물, 실재이기를 거부하는 풍경들...

-작가노트 중에서

 

실존의 공간

현대미술이 실존주의 철학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듯이, 현대인이 지닌 실존주의의 감정은 이미 현대미술에서 익숙한 사유의 대상이다. 김병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현대인의 존재의식과 고독감을 성찰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존재는 본질을 먼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가 우리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그 스스로 의식하기 전에 우리들이 벌써 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들은 벌써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벌써 존재하고 나서 우리 자신의 현실적 존재의 의미에 대해 탐구한다. 이러한 자기규정은 인간의 자유로운 주체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진실하지 못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결정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들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실이 부재한 공간 안에 오직 스스로를 의지한 채 존재하고 있는 인간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하는 본질적 불안의 상태가 된다.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죽음과 불안 앞에서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다.

기계문명의 발달과 디지털 시대에 따른 인간의 소외와 상실감, 소통의 부재 등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점차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의식이 약해지고, 사고마저 과학기술에 의존하고 규격화, 형식화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는 실존주의적 현대인의 비극적 인간상은 현대인의 부재화된 현재를 상징하고 있다. 김병걸 작가의 이번 전시는 현대인의 실존 문제라는 오래된 전통적인 질문을 던지며, 실존의 상실과 공허함을 표현하고 있다.

 

실존의 상실과 공허함 : 회색인간의 자화상

김병걸 작가는 작품 <칸의 그림자>와 <바다와 모더니스트는 늙지 않는다>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루이스 칸의 존재론적 사유체계에서 찾고 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가인 루이스 칸 Louis l. Kahn(1901-1974년)이 자신의 건축을 이해하는 키워드를 침묵과 빛으로 정의했다.

 

“침묵이란 단지 소리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무엇이다. 침묵은 존재를 향한 욕망이며, 표현을 향한 욕망이고, 새로운 필요를 낳는 원천이지만 측량할 수 없다. 반면 빛은 측량 가능하며, 의지와 법을 통해 현존을 실현하고, 기존 사물들의 척도로서 가능하다... 영감은 예술의 성소(sanctuary)이자 그림자의 보고(treasury of shadow)인 침묵과 빛의 경계에서 나온다.” _Louis Kahn

 

<칸의 그림자>에서 테이블 위에 적혀 있는 Design(디자인), Form(형상), Realization(깨달음), Philosophy(철학), Thought(생각) 등의 단어들은 절제된 형태 속에 영감과 사색의 공간을 창출했던 루이스 칸의 존재론적 사유를 상징하고 있으며,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듯한 <바다와 모더니스트는 늙지 않는다.>는 칸의 인물사진을 등장시키면서 현대인의 존재론적 의미를 사유하는 칸의 자화상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침묵과 빛이 만들어내는 감각을 통해 공간과 사물의 본질에 다가간 루이스 칸의 존재론적 접근은 김병걸 작가의 작품에서 중요한 철학적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작품 <그림자 혹은 잿더미>(2010)는 우리들은 공허한 틀 속에 갇혀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실존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공허한 모습을 상기시킨다. 도시의 회색빛 구조물처럼 짙은 잿빛의 인물 형상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가 사실은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실존주의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에 타고 남은 재로 만들어진 이 헛된 몸짓의 인물, 형상들은 실존적 공허함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의 정체성이며 자화상이며, 한 순간 먼지로 사라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 실존의 무의미함과 허무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비극적 인간 실존의 깨달음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 실존의 상실과 모순, 인간의 존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문제는 현대미술에서 주된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다. 김병걸 작가는 존재의 실상은 근원적으로 공허와 비애, 고독을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에게서 공허와 비애, 고독이 바로 '실존'임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고독한 섬처럼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대인의 실존문제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으며 새로운 의미생산과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copyright KIM Byung-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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